부부만의 첫 여행, 나를 찾아가는 시간
둘째까지 대학에 보내고, 정말 오랜만에 남편과 단둘이 떠난 첫 번째 여행이었어요.
예전엔 아이들과 넷이 함께 다녔던 여행이었지만, 이번엔 내가 가고 싶은 곳, 내가 보고 싶은 것, 내가 먹고 싶은 음식 을 고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.
이 여행을 통해 다시 ‘나’를 찾아가는 여정을, 남편과 함께 천천히 시작해보려 합니다.
그 첫 번째 목적지가 바로, 캐나다 동쪽 끝에 위치한 작은 섬,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(Prince Edward Island, PEI)예요.
이 여행지를 선택한 이유
본연의 나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, 문득 떠오른 건 어릴 적 읽었던《빨간머리 앤》이었어요
책 속에서 앤이 보여준 상상력, 소녀의 감수성, 자연을 사랑하던 그 따뜻한 세계가 지금의 나에게 위로가 되어줄 것 같았어요.
어린 시절에는 TV 애니메이션으로, 그리고 몇 년 전에는 Netflix 시리즈 ‘Anne with an E‘ 를 보며, 다시 그 시절의 감정을 떠올리게 되었죠.
그 향수 어린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나를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로 이끌었습니다.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, 그 시절의 나와 마주하는 조용한 여행을 하고 싶었어요.
빨간머리 앤과 PEI
우리가 사랑하는 《빨간머리 앤》은 단지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에요.
이 책은 작가 몽고메리가 자신이 자란 고향과 유년기의 감성, 실제 장소들을 바탕으로 쓴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예요. 그래서인지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(PEI) 를 걷다 보면 마치 앤이 금방이라도 길모퉁이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.
루시 모드 몽고메리 작가 소개
루시 모드 몽고메리 (Lucy Maud Montgomery, 1874–1942)
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(Prince Edward Island, PEI) 출신의 작가로,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소설 **《빨간머리 앤 (Anne of Green Gables)》**의 저자입니다.
1874년, PEI의 작은 마을 **클리프턴(현재의 뉴런던)**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조부모 밑에서 자랐습니다. 자연 속에서 혼자 상상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그녀의 유년기는, 후에 앤 셜리라는 캐릭터의 탄생에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.
몽고메리는 1908년에 《빨간머리 앤》을 출간해 큰 성공을 거두었고, 이후에도 앤 시리즈를 포함해 20편이 넘는 소설과 수많은 단편을 발표했습니다. 그녀의 작품은 따뜻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자연 묘사, 그리고 소녀의 성장과 희망을 담아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.
그녀는 1942년 토론토에서 생을 마감했지만, 지금도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는 그녀의 작품 세계를 직접 느낄 수 있는 여행지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습니다.
빨간머리 앤, 원래 제목은 Anne of Green Gables
우리가 알고 있는 ‘빨간머리 앤’의 원제는 Anne of Green Gables예요. 한국에서는 ‘빨간머리 앤’으로 번역되어 더 정감 있고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왔지만, 원래 제목은 ‘초록 지붕 집의 앤’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.
캐나다에서는 청소년이나 성인 독자도 즐기는 **교양 문학(classic fiction)**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.
특히 초기 한국 번역본은 어린이용으로 쉽게 편역된 경우가 많았고, 이로 인해 ‘어린이 동화’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죠. 하지만 원서를 살펴보면 성경 구절, 셰익스피어, 낭만주의 시인들의 작품 등 문학적 인용과 철학적 대화가 많이 담겨 있어요. 단순한 성장담을 넘어, 시대적 제약 속에서도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는 여성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는 깊이 있는 작품입니다.
TIP: 실제 여행지에선 “Green Gables”라는 표현이 더 자주 사용되므로, 지도 검색 시 “Anne of Green Gables” 또는 “Green Gables Heritage Place”를 입력하는 것이 좋아요
전시관 한쪽에는 《Anne of Green Gables》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·출간된 책들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어요. 나라별로 언어도 다르고 디자인도 다양했지만,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책 표지는 초록색이 중심이었고, 제목도 ‘초록 지붕 집의 앤’에 가까운 의미로 번역되어 있었죠.
그런데 그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권, 바로 한국어 번역본이었어요.
선명한 빨간색 표지, 그리고 ‘빨간머리 앤’이라는 제목.
어린 시절부터 익숙했던 그 이름이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는 조금 특별한 번역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죠. 한국과 일본에서만 유독 앤의 외모에 초점을 둔 이 제목은, 아동용으로 쉽게 다가가기 위한 출판사의 전략이었다고 해요. 하지만 원래의 제목인 ‘Anne of Green Gables’는 앤이 새롭게 시작하게 된 공간, 초록 지붕의 집을 상징하고 있답니다.
그 작은 차이가 어쩐지 더 정겹고도 재미있게 느껴졌어요. 각 나라의 문화와 시대에 따라 같은 책도 이렇게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, 앤의 책장에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.
앤의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
앤 셜리는 외모 콤플렉스를 지닌 채 입양된 소녀이지만, 자기만의 취향과 감수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, 자신의 말과 상상력으로 세상과 소통해 나가는 매우 독립적인 여성상이에요. 사랑 이야기도 있지만, 앤은 남성에 의해 삶의 방향이 좌우되지 않고, 교육과 직업, 글쓰기 등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.
그 모습은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자신과도 많이 닮아 있어요.
몽고메리는 실제로도 상상력 넘치는 소녀였고, 글쓰기를 좋아했고,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교사로 일하며 사회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 노력했어요. 그녀는 자신이 자란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의 따뜻한 공동체와 자연환경을 앤의 이야기 속에 녹여냈고, 작가로서의 자의식도 앤을 통해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.
몽고메리는 자신의 일기와 인터뷰, 편지에서 《Anne of Green Gables》의 아이디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:
“나는 신문 기사 하나에서 영감을 받았고, 그 기사를 내 상상력으로 덧붙여 이야기를 만들었다.”
그 기사에는 아이를 입양하는 과정에서 성별 착오가 있었다는 짧은 에피소드가 실려 있었고, 몽고메리는 이 상황을 흥미롭게 여겨, “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?”라는 상상을 통해 앤의 캐릭터를 만들어 낸 거예요.
처음 몇몇 출판사들은 이 소설을 거절했지만, 1908년 결국 출간되며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. 평범한 시골 소녀의 이야기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순간이었죠.
이런 배경을 알고 다시 읽는 《Anne of Green Gables》는 단순한 ‘어린이 소설’을 넘어, 자기 정체성과 독립을 찾는 여성의 이야기로 더 깊게 다가옵니다. 여행지에서 앤의 흔적을 따라가며, 작가 몽고메리와 앤의 삶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순간들을 마주하는 것도 이 여행의 또 다른 감동이에요.
앤의 집, 진짜로 존재해요
《빨간머리 앤》 속 “초록 지붕 집(Green Gables)”은 사실 실존하는 장소예요. 몽고메리의 사촌이 살던 집으로, 그녀는 그곳에 자주 놀러가 글을 쓰곤 했습니다. 그 집은 현재 Green Gables Heritage Place로 보존되어 있어 누구나 방문할 수 있어요.
집 안에는 앤의 방이 실제처럼 꾸며져 있고, 마차 타기 체험, 복장 대여, 기념품 샵 등 다양한 즐길 거리도 있어요.
책 속 산책길, 직접 걸어볼 수 있어요
책에서 앤이 즐겨 걷던 Lover’s Lane이나 Haunted Wood 같은 이름의 산책로도 실제로 존재합니다. Green Gables Heritage Place 뒤쪽으로 연결된 이 작은 숲길은 고요하고 아름답고, 걷는 내내 마치 책 속 한 장면을 통과하는 기분이에요.
앤이 마릴라에게 혼나고 나서, 혹은 뭔가 기분이 들뜰 때마다 찾던 그 숲길이 바로 여기랍니다.
책 속 장소 vs 실제 장소
📘 책 속 장소 | 📍 실제 장소 (PEI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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Green Gables | Green Gables Heritage Place, Cavendish |
Lover’s Lane | 캐번디시 국립공원 내 산책로 |
Avonlea Village | 캐번디시 마을의 테마 빌리지 |
Anne’s House of Dreams | Silver Bush (Anne of Green Gables Museum) |
Bright River Station | Hunter River 기차역 (현재는 사라짐) |
이곳들 대부분은 자연경관이 너무 아름다워서 사진 찍기 좋은 스팟으로도 인기예요.
🌰 도토리 팁
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는 단지 여행지가 아니라, 누구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나게 되는 따뜻한 장소입니다. 앤의 집, 앤이 걷던 숲길, 그리고 작가 몽고메리의 삶까지 — 그 모든 걸 따라가다 보면, 어느새 내 마음도 단단해지는 걸 느끼게 될 거예요.